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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움’으로부터의 ‘자유’ 화가 유희만:서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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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움’으로부터의 ‘자유’ 화가 유희만

서산신문 | 기사입력 2022/05/16 [08:10]

‘가벼움’으로부터의 ‘자유’ 화가 유희만

서산신문 | 입력 : 2022/05/16 [08:10]


주말 늦은 밤, 원도심 거리에 인적이 드물다. 하지만 밖으로 밝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어두운 계단을 올라 유희만 작가의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마침 전시준비로 최근 새로운 작품들을 운 좋게 만날 수 있었다. 수없이 그어져 있는 선과 빼곡하게 수납장을 채우고 있는 드로잉은 그동안 작업의 고민과 치열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유희만 작가의 작품은 그동안 variation-다완 시리즈에 이어 이번 작품은 선(線)을 주목하게 한다. 곧 6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보다 훨씬 작업 스케일과 힘이 커졌다. 주변의 형상을 생략하고 단순하다 못해 오히려 추상에 가까운 구성과 속도감 있는 강한 붓질의 선이 시선을 강탈한다. 작가는 “가벼움을 통해 새로운 길이라는 확장된 공간으로 나아가고 있는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선(線)은 지금까지 그가 드러내지 못했던 잃어버린 자신과 동일화됨이 보여지는 대목이다.

 

나는 길에 서 있다. 때로는 좌표를 잃고 헤매기도 한다. 그래서 작업의 시작은 언제나 길에서 출발하고 길에서 멈춘다. 길은 시작과 끝 또는 출발과 도착의 과정에서 다양한 행위의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길은 자신의 미래를 향한 길이든 혹은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이상이든 우리는 끊임없이 생명의 움직임을 통해 목적지를 향해 가는 인생의 과정을 의미한다. 내 작품에서 보이지 않는 길과 선은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한 긴 여정 속에서 때로는 삶의 고통과 마주하거나 극복해야 하는 형이상학적 자유의 길을 의미한다.  2021. 11. 20 작업노트 中에서

 

 

# 작업에서 선(線)이 의미하는 것은?

선의 모티브는 새의 형상에서 착안했고 작품에서 보여지는 선(線)들은 자유로운 나 자신을 연출하고 있어요. 우리 인간은 태초부터 날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죠. 나도 어릴 적 새들이 날아가는 바다 건너에는 새로운 세상이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어쩌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몰라요. 안평대군이 안견 선생을 통해 몽유도원도를 그렸듯이 말이에요. 그것은 다시 말하면 물리적 제약이나 정신적 구속에서 벗어나 스스로 가슴속에 담아왔던 꿈과 이상을 실천하고 싶어 한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가벼움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선 행동과 정신을 자유롭게 선택해 그 가벼움은 물론 진실하고 본질적인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자아성찰의 과정이기도 하죠. 새의 몸짓에서 나오는 단순하면서도 다양한 선은 내면에 존재해 있는 나 자신이며 그 선을 통해 가벼움과 자유를 집약시키고자 했어요.

 

#가벼움으로부터의 자유란?

주변이 바다를 지척에 두고 있는 농촌 마을이다 보니 철새들과 갈매기를 많이 보면서 자랐죠. 어느 날 철새들을 보면서 어디로 가는 걸까? 저 날아가는 새들은 참 자유롭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40여 년간 붓을 잡고 지금까지 때로는 험난하고 외로운 인생길에서 무엇을 찾아서, 혹은 무엇을 지키기 위해 방황했는가에 대해 스스로 깊게 고민한 적이 있어요. 삶을 되돌아 보면 미래의 불안감과 절박함에 맞닥뜨릴 때마다 무엇이든 더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것이 명예든 혹은 물질에 대한 것이든 성실과 노력이 부족했다고 믿었으니까요.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것은 욕심이었고 스스로를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었지요. 결국 이상의 날개를 잡고 있었던 것은 나 자신의 욕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캔버스의 여백을 하나의 자연적 우주로 해석하고 그냥 비우기란 테크닉이 좋은 작가일수록 쉽지 않아요.나의 재능을 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웃음) 우선 보는 나 자신이 불안하고 불편해요. 그래서 채워 넣어야 안도의 숨을 쉬거나 비로소 붓을 내려놓잖아요? 그렇게 많은 시간을 허비했죠. 좀 전에 말했듯이 물리적 또는 정신적 구속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상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은 가벼움이며 그 가벼움에 대해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거죠.

 

#그림과의 인연은? 나에게 그림은?

자유? 를 통해 잃어버린 나를 찾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어릴 적 간직했던 꿈을 지키고 또한 상처와 상실감을 회복하고자 끊임없이 붓질을 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어릴 적 아버지와의 추억으로부터 화가라는 직업을 생각했어요. 저의 아버지는 50이 넘은 나이에 늦둥이를 보아서 기뻐하셨고 덕분에 저는 남다른 애정을 많이 받고 자랐죠. 국민학교 2학년 여름 방학 숙제로 풍경화를 그렸는데 아버지와 함께 화판과 크레파스를 챙겨 산 언덕에 올라가 원두막이 보이는 참외밭을 그렸어요. 도화지 안에 내가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마음껏 그려 넣을 수 있어 그림이 좋았고 어른이 돼서는 세상을 담을 수 있어 좋았어요. 지금 돌이켜 보면 미술학원도 없던 시절에 아버지와 천경자 달력을 펴놓고 따라 그렸던 추억이 어쩌면 지금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해요.

 

# 최근 작품의 설명을 듣는다면?

이 그림은 나 자신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면되요. 화면의 전체가 길이며 일정한 경계분할로 이루어져 평행을 이루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 걸어가는 길과 내면의 길을 갈라놓는 경계 역할을 하고 있죠. 그 경계로 인하여 나는 이상의 세계를 볼 수 없고 어쩌면 동경하게 되는거죠. 하늘길을 파란색으로 표현했으며 하늘은 비본질적 자아를 깨우쳐주는 지고(至高)한 존재라고 다들 생각하잖아요. 그것은 내가 잃어버린 세계이며 도달해야 할 종착지라고 봐도 좋아요. 어쩌면 영원히 도달할 수도, 볼 수 없을 수도 있어요. 자아 성찰을 통한 자유만이 나를 존재하게 한다고 생각해요.

 

# 원도심 작업실로 오면서 생활에 변화가 있다면?

얼마 전 이사하면서 평생을 끓고 다녔던 책을 모두 버리고 집안 살림살이도 꼭 필요한 것 빼고는 웬만한 것은 다 버렸어요. 식기와 수저도 두 벌씩만 남겼어요. 정말 마음이 홀가분해졌어요. 그림은 참 솔직한 감정의 거울 같아요. 생활이 번잡스럽지 않고 단조로워지니 자연스럽게 그림도 화면을 많이 비우게 되는 걸 보며 스스로 참 신기하게 느꼈어요. 언젠가 책에서 황혼기는 세상의 모든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나이라고 읽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살면서 경험한 인생의 노련함도 있겠지만 그만큼 감정의 기복이 없고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에서 오는 자유로움과 통찰력이 아닐까 싶어요.

 

# 앞으로의 계힉은?

앞으로의 계획은 없어요. 길게는 몇 개월 짧게는 며칠의 계획은 있죠. 하지만 몇십 년 후 또는 먼 미래의 계획은 결국은 욕망으로 변해 나를 괴롭히더라고요. 예를 들면 화가가 멋진 작업실을 지을 계획을 세우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려서 꿈꾸던 그림을 그리는 일과는 전혀 다른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아마도 각자 되돌아보면 인생에서 현재의 자리가 당신이 계획했던 바로 그 자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해요. 순간의 판단과 결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전시계획도 작품이 풀리면 그때 생각하죠. 지금까지 단 한번도 계획을 세워서 잘 된 전시가 없었어요. 욕심이 생겨 오히려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다른 결과물이 나오거나 그로 인해 자존감이 떨어져 힘들었던 경우가 많았죠. 물론 노력의 차이 정도는 있겠죠. 하지만 작업이 노력으로 대신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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