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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울도예공방 대표, 정현옥 도예가:서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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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울도예공방 대표, 정현옥 도예가

서산신문 | 기사입력 2022/05/02 [07:41]

해울도예공방 대표, 정현옥 도예가

서산신문 | 입력 : 2022/05/02 [07:41]


꽃바람이 불던 화창한 오후, 석남동 137-7번지에 자리잡은 해울도예 공방을 찾았다. 공간을 빼곡히 메운 집기와 도자기들은 그녀의 관록과 34년 세월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도예가로거친 흙과 평생을 함께하며 지키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흙에 생명을 불어넣어 도자기로 탄생시키는 작업이야말로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말하는 정현옥(53) 도예가와 마주 앉았다.

 

# ‘해울’이란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해울’이란 순수한 우리말로 이른 아침 풀잎에 맺히는 첫 이슬에 햇빛이 비쳐 반짝이는 모습을 뜻해요. 햇빛에 반짝이는 아침이슬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지었어요. 도자기 만드는 일은 부지런하지 않으면 어려워요. 이른 아침에만 볼 수 있는 “해울”이란 말은 항상 게으름으로부터 스스로 돌아보게도 하죠. 1992년 도비도예공방으로 처음 시작했어요. 그리고 5년 후 1997년 해울 도예공방으로 명칭을 바꾸고 2006년 석남동에 자리를 잡아 올해로 30년째 도예 작업을 해오고 있어요. 주로 마애삼존불과 천수만 철새 등 서산의 자연과 문화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최근에는 도자벽화와 조형물 등 공공미술 분야에서도 활동하고 있고요. 틈틈이 서산시 종합사회복지관 등의 문화센터에서 도예 강사로 활동도 하고 우리 지역에 도예의 아름다움을 알리는데 작지만 힘을 보태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

도자기를 만드는 일은 확실히 쉽고 간편한 일은 아니죠. 오히려 고된 노동에 속한다고 봐야죠. 흙은 거칠고 불은 위험해요. 그것들을 다루는 일은 항상 육체적인 노동과 정신의 긴장이 늘 뒤따르죠. 그리고 그 작업과정에는 어김없이 기다림의 시간이 존재해요.

흙을 준비하는 데는 흙을 침전시켜 이물질을 거르는 일을 한 다음 숙성시키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렇게 흙이 준비되면 점토로 작품을 만든 다음에는 그늘에서 천천히 건조시키는 시간이 필요해요. 건조된 기물들을 초벌하기 위해서 보통 여덟 시간 이상 불을 때야 해요. 그 다음 다시 하루 정도 가마를 식혀야 초벌된 기물들을 꺼낼 수가 있어요. 

그리고 유약을 입힌 다음 유약이 마르기를 기다려 굽을 닦아내고 다시 가마안에 재임을 하죠. 모든 준비가 끝나면 마지막으로 불을 붙여요. 가마마다 다 다르지만 보통 열 시간에서 길게는 하루가 꼬박 가는 일도 있어요. 요즘은 예전에 비해서 사정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전자제어식의 전기 가마가 아니라면 불을 땔 때는 가마 옆에 꼬박 붙어 있어야 해요. 

흙과 유약에 따라 불을 때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때로는 한밤중에 가마를 지키고 있어야 할 때가 허다해요. 더구나 불을 다루는 일이 위험하기도 하고요. 온도를 높일수록 가마가 점점 뜨거워지고 화염이 가마 안의 도자기들을 빨갛게 달구죠. 유약이 녹기 시작하면 도자기의 표면이 매끄럽게 광택이 나면서 주변에 놓인 기물들끼리 서로 몸을 비추게 돼요. 가마 안의 온도가 섭씨 1300도 가까이 이르면 그때 불을 꺼요. 

이때부터는 다시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죠. 가마를 식히는 데는 보통 불을 땐 만큼의 시간이 소요돼요. 가마를 일찍 열면 갑자기 온도가 떨어져 완성된 도자기가 냉파를 입고 깨져버려요. 가마 안의 일은 열어보기 전까지는 몰라요. 유약은 잘 녹았는지, 온도가 너무 높아 흘러내리지는 않았는지, 혹은 기물이 설익어 못쓰게 되진 않았는지 알 수가 없죠. 경험과 지식으로 어느 정도 예측은 하지만 항상 변수들이 존재하기 마련이죠. 때로는 기물이 깨지면서 파편이 튀어 다른 기물들까지 못쓰게 만드는 경우도 있어요. 기대감에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런 저런 걱정을 하다보면 어느덧 가마가 점점 식어가죠.

 

# 도자기가 구워 나왔을 때 기분은?

매번 반복하는 일이지만 가마의 문을 처음 열 때는 긴장이 돼요. 오래된 고분의 문이라도 여는 듯 설레는 마음!? 가마의 문이 열리면 도자기들이 어둠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모습은 정말 신세계가 따로 없죠. 하물며 금방 꺼낸 도자기는 아직 온기를 품고 있어요. 그동안의 지루하고 고된 노동의 시간들이 모두 잊혀지는 순간이라고나 할까요. (웃음)

도자기를 만드는 일은 힘들지만 저에게는 즐거운 일이죠. 내 손으로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고 그것이 구워져 나왔을 때 느끼는 기쁨은 마치 조물주가 처음 세상을 만들었을 때의 그것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자기를 만드는 일은 그런 기쁨을 맛보는 일이기도 해요.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일이기도 하고요. 도자기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그릇과 화분에 음식을 담고, 꽃을 심으며 즐거워하는 일도, 아이들이 조그만 손으로 조물거린 진흙덩이가 사람도 되고 꽃도 되고 또 새와 나비가 되어가는 걸 보는 일도 공방을 찾는 이들에게 내가 만든 찻잔에 차를 담아내는 일도 모두 그렇다고 생각해요.

 

#일반인도 취미로 배울 수 있나요?

취미로 도예를 시작하신 분들은 대부분 자신을 위해 몰입하고 즐기는 과정에서 만족감과 성취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도자기를 만들다 보면 집중해서 정교한 작업을 필요로 하는 과정도 있고 때론 단순한 기법을 지속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시간이 언제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몇 시간이 금방 흘러요. 걱정거리나 고민도 잠시나마 잊게 해 주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도예는 다른 취미하고는 조금 결이 달라요. 도자기를 배우는 분들을 보면 처음에는 자신을 위해서 무언가를 만들게 되는데 조금씩 실력이 늘어갈 때쯤 되면 다른 누군가에게 줄 것들을 만들게 된다는 거죠. 오늘은 무얼 만들어 볼까 하다가 누군가를 떠올리고 그 사람한테 필요하거나 어울릴만한 걸 만들기 시작해요. 완성된 도자기를 보면서도 이건 누굴 주면 좋겠고, 이건 누가 보면 좋아할 거 같고 등등.... 만들면서도 그 사람에 대한 소소한 일들이 얘깃거리가 되죠. 친구나 지인들인 경우도 많지만 역시 가족이 대상인 경우가 많아요. 사춘기 딸의 다이어트를 위해 작은 밥그릇을 만들기도 하고, 술 좋아하는 남편 흉을 보면서도 막걸리 사발 한 쌍을 공들여 만들기도 한다. 아마도 뭔가 나누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아이들 도자기 체험을 하면서 보람이 있다면?

딱히 증명할 길은 없지만. 도자기를 가르치면서 이런 경우를 많이 봤어요. 조금 비약을 하자면 흙을 만지면서 흙이 가진 성질이 사람을 잠시나마 순화시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아이들과 도자기 체험을 같이 하다 보면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걸 거침없이 해내는 아이들이 있어요. 정교하다거나 깔끔하게 만든다거나 하는 게 아니어도 흙하고 유난히 친숙하게 집중을 잘 하는 아이들이 있죠. 당연하게 그런 아이들을 칭찬하게 돼요. 재밌는 건 선생님들의 반응이죠.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이렇게 집중하는 모습을 처음 본다고 하시거나 미술에 재능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칭찬해 주셔요. 그러면 아이는 더 열심히 흙을 만지고 친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기도 하죠. 평소 수업 시간에 그 아이들이 어떤 모습일지는 대충 상상이 가요. 사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흙 만지는 걸 좋아해요. 흙을 만지는 놀이가 아이들의 정서와 오감의 발달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은 책이나 이런저런 정보를 통하지 않더라도 같이 흙을 만지며 시간을 보내보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어요. 그런 아이들을 만나고 오는 날은 유난히 더 뿌듯하고 보람이 있죠. 흙을 만진다는 것은 어른에게나 아이에게나 해로움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흙은 사람에게 항상 온기를 나눠주기 때문이죠.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도자기를 시작한 지 어느덧 34년이 흘렀어요. 처음 대학에 입학했던 스무 살 여자아이가 지금은 열아홉, 열일곱 살이 된 두 딸의 엄마가 되었네요. 흙을 만지는 게 좋아서 시작한 일이 그동안 하루하루를 살게 했고 아이들을 키우게 했어요.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었죠. (웃음) 지금도 여전히 흙을 만지는 일이 좋아요. 거창한 계획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꼭 하고 싶은 일 한 가지는 정성을 다해 예쁘고 고운 그릇을 빚어 항상 바쁜 엄마를 기다려준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소박하지만 근사한 밥상을 차려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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